무엇을 죄라고 생각합니까. 재림교회는 죄를 도덕적 잘못이나 죄 된 행동을 선택하는 행위로 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믿기 때문에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완전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음식 하나 잘목 먹어도 죄의식을 느끼고 살기 때문에 구원의 기쁨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다. 재림교회는 죄를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그런 행동을 선택하는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만일 죄를 그렇게 피상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 힘으로 죄를 극복하고 죄를 선택하지 않으려고 하게 되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믿게 되는 잘못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결국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이 되고 말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완전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완전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교회는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으로 봅니다. 성경에서도 죄를 그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5:14-15에서 죄와 범죄란 말로 세 가지의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는데 다 관계가 깨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파라바시스, παράβασις)와 같은 죄(하마르티아, ἀμαρτία)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파라프토마, παράπτωμα)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죄란 의미로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말로 목표(관계)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파라바시스는 “곁길로 빠져 걷는다”는 말로 역시 관계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파라프토마는 곁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말로 역시 정로(관계)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도덕적 타락이나 그 잘못을 선택하는 구체적 행위를 말하지 않고 좀 더 근원적인 것, 다시 말하면 피조물이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관계가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타락이나 잘못의 선택은 관계가 깨진 것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타락을 고치거나 잘못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교리는 모두 이 인격적 관계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요 1:12). 구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 1:12). 성화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자라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골 1:10). 완전은 그리스도 안에 인격적으로 거하는 것입니다(골 1:28). 죄란 하나님과의 이 관계를 깨뜨리고 스스로 떠난 것입니다. 회개란 관계가 깨진 것을 깨닫고 다시 관계 속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빗나가는 화살처럼 점점 관계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도덕적 타락이나 그 타락을 선택하는 것으로 본다면 죄를 피상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구원의 주체가 그리스도가 아닌 죄를 극복하는 자신이 되는 심각한 오류로 우리를 인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