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2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재림교회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육식의 유혹을 이기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에 해로운 줄을 알면서도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보다 더 의지력이 강한 사람인데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마서 14장의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바울의 기록은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채식과 육식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음식에 대한 말씀들은 우상 숭배 음식(신전에서 나오는 고기)을 먹는 것의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로마서 14장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채소만 먹고 날들을 준수하는 로마서 14장의 “믿음이 약한 자”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깨닫지 못한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다행히도 무엇이나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는 “강한 자”에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전적으로 로마서 14장을 오해한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1. 로마서 14장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당시 바울이 “강한자와 약한 자”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저자의 의도를 떠나서 아무리 논쟁을 벌여 봐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채소만 먹는 사람을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반면에 모든 것을 먹는 사람을 강한 자라고 부른 일도 없습니다. 바울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강한 자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우선 초기 교회에서 먹는 것의 문제가 생길 경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부터 10장까지에서 우리는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가 그 당시 신전이 있는 모든 도시에서 보편적인 문제였음을 발견합니다. 로마나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는 거대한 신전들이 있었고 우상 숭배의 중심은 역시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이 가져오는 제물들은 제사가 끝난 후 대부분 시장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제사장들의 생계와 성전 운영 경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시장에 나온 고기들은 어떤 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성도들은 본의 아니게 이방신에게 바쳐졌던 우상 제물을 사 먹게 될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 일은 교인들 사이에서 심각한 양심의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는 말씀은 육식과 채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시장에 나온 고기를 우상 제물로 생각하고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으며, 고기를 사서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성도들을 바울은 “연약한 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2. 그러나 바울은 이런 미묘한 문제는 지식으로 풀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기 때문입니다(고전 8:1).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더럽혀지거나 문제될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초연하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어떤 교인이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믿음에 손해를 본다면 우리는 내 자유만을 주장할 수 없다(고전 8:13)는 것이 바울의 생각입니다.
3.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는 말은 마음대로 고기를 먹는 사람은 믿음이 있고, 채식하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의 문제입니다. 시장에 나온 음식을 모두 우상 제물로 생각하고 그것을 먹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바울은 연약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약하다거나 좋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우상 제물 먹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고전10:20-22). 이것은 그런 예민한 행위 때문에 자주 마음이 상하고 실족하는 마음이 여린 사람들에 대한 동정 어린 표현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