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로우신 창조주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후 쉬셨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창조의 기념일로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율법의 넷째 계명은 이 제칠일 안식일을 쉼과 예배와 안식일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교훈과 실천에 조화되게 봉사하는 날로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며 인간상호간에 교제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구속의 상징이며 우리의 성화의 표징이요 우리의 충성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맺은 영원한 언약에 대한 영구한 표징이다. 이 거룩한 시간을 저녁부터 저녁까지, 즉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 즐겁게 준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행위를 경축하는 것이다. -기본 신조, 20.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들의 낙원의 가정을 답사하였다. 풍경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창조의 여섯째 날인 그 금요일에 해가 천천히 기울자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창 2:1)의 창조 사업을 마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방금 완성하신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웠지만,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된 부부에게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그분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 곧 특별한 축복과 교제의 날이요 그들의 창조주와 교통하는 한 날을 제정해 주셨다.
성경 전편에 나타난 안식일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의 중심이다. 창조의 기념인 그 날은 왜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준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들이다. “그런고로 안식일은 바로 거룩한 예배의 기저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위대한 진리를 가장 감동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주며 다른 제도로서는 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제칠일에 드려지는 예배만이 아니라 모든 예배에 있어서, 거룩한 예배의 참된 근거는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들 사이의 구별에서 발견된다. 이 위대한 진리는 결코 폐물이 될 수 없으며 결코 잊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이 같은 진리를 인류 앞에서 영원토록 간직하기 위함이었다.
창조시의 안식일. 안식일은 죄 없는 세계로부터 우리에게로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땅에서 하늘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세 특수한 행위로 안식일을 제정하였다.
1.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쉬셨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쉬어 평안하”(출 31:17)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휴식이 필요해서 쉬신 것이 아니었다(사 40:28). “쉬셨다”고 하는 동사 사바트(shabath)는 실제적으로 노동이나 활동으로부터 쉬는 것을 의미한다(창 8:22 비교). “하나님의 쉼은 피로나 노고의 결과가 아니라 전에 하시던 일을 그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따라 쉬도록 하기 위해 쉬셨다. 즉 그분께서는 인간이 본받도록 모본을 보이셨다(출 20:11).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창조 사업을 다 이루었다(창 2:1)고 하셨는데, 그분께서 일곱째 날에 “당신의 일을 마쳤다”(창 2:2)고 하는 성경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의 창조 사업을 마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직 안식일을 제정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그것을 제정하시는 일은 안식일에 쉬심으로써였다. 안식일은 당신의 사업을 마치시는 그분의 끝손질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축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제정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축복하셨다.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는 의미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대상으로 선언되었다는 의미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날이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3.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 어떤 것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신성하고 거룩하게 만들거나, 또는 그것을 거룩하게 혹은 거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따로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을 성별 하는 것이다. 사람, 장소(성소, 성전, 또는 교회와 같은) 및 시간(거룩한 날들)은 거룩하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이 날이 거룩하며 그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부요하게 하는 고상한 목적을 위하여 그 날을 구별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축복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는데, 이는 당신께서 이 날에 당신의 모든 일로부터 떠나 쉬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개인적인 임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거룩하게 하심을 가져오신다.
시내 산에서의 안식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후의 사건들은 그들이 대부분 안식일을 잊어버렸음을 보여준다. 노예 생활의 엄격한 요구 사항들은 안식일 준수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유를 얻은 직후에 만나의 기적과 십계명의 반포를 통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해야 할 그들의 의무를 강하게 상기시켜 주셨다.
1. 안식일과 만나.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반포하시기 한 달 전에, 만일 그들이 그분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출 15:26; 창 26:5 참조)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고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다. 이 같은 약속을 한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신성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셨다. 만나의 기적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그들이 제칠일에 쉬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구체적인 용어로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매 주말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날을 위한 그들의 필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만나를 공급하셨다. 그들은 다음날까지 조금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한다면 상해서 못쓰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출 16:4, 16-19). 그들은 여섯째 날에는 그 날과 안식일 양일 간 그들의 필요에 충분하도록 평상시의 두배를 거두어야 하였다. 여섯째 날은 예비하는 날이 되어야 함과 안식일이 어떻게 준수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 16:23). 오직 제칠일에만 만나가 상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출 16:37). 모세는 넷째 계명의 그것과 유사한 말로써,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칠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출 16:26)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던 사십 년 동안에, 또는 2000번 이상이나 매주마다 계속되는 안식일에 만나의 기적은 그들에게 일하는 육일간과 쉬는 제칠일이라는 이 같은 본보기를 상기시켜 주었다.
2. 안식일과 율법.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십계명의 중간에 놓으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십계명의 모든 계명들이 중요하며 어느 하나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약 2: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하셨다. 안식일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그 중요성을 잊어버릴 위험성을 인간에게 경고하시면서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다.
안식일 계명을 시작하는 말들-“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은 안식일이 시내 산에서 최초로 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말들은 그것이 보다 더 일찍이-그 계명의 나머지 부분이 말해 주듯이 실제로는 창조 시에-기원되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일을 당신의 창조의 기념일로 준수하기를 의도하셨다. 그것은 안식과 예배를 위한 시간을 규정하며 우리로 하나님과 그분의 솜씨를 숙고하게 한다.
창조의 기념일로서, 안식일 준수는 우상 숭배에 대한 해독제이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킴으로써, 그것은 그분을 모든 신들과 구별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참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의 표-우리가 창조주와 왕으로서의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가 된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의 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인은 세 가지 요소들을 포함한다. 그 인의 소유자의 이름과 그의 직함과 관할권이 그것이다. 공식적인 인들은 대단히 중요한 증서들의 유효성을 인증하는 데 사용된다. 증서는 그 위에 찍힌 인의 주인인 관리의 권위를 지닌다. 인은 관리 자신이 그 법령 제정을 승인했으며 그의 모든 직권으로 그것을 보증한다는 의미이다.
십계명 가운데서 인의 중요한 요소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안식일 계명이다. 그분의 이름: “네 하나님 여호와”, 그분의 직함: 만드신 분-창조주, 그리고 그분의 영토[관할권]: “하늘과 땅”(출 20:11)을 말해 줌으로써 십계명 가운데서 참 하나님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계명이다. 넷째 계명만이 십계명이 누구의 권위로 주어졌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의 확실성과 구속력에 대한 증거로서 그분의 율법에 부착되어 있는 “하나님의 인을 포함한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죄와 반역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능력과 권위를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서 또는 그것들에 대한 표징으로서 제정하셨다. 그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는 명령에 의하여 부과되는 영원한 개인적 의무를 규정하는 제도가 되어야 하였다”*
이 계명은 주일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6일을 주셔서 그 동안에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게 하셨다(출 20:9, 10). “‘6일간’은 일하는 날이나 ‘제칠일’은 쉬는 날이라고 명령한다. ‘제칠일’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쉬시는 날이라는 사실은 ‘안식[쉬는]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의 서두에서 명백해진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활력을 주기 위하여 육체적인 휴식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쉬라는 당신의 명령을 당신의 모본에 기초하신다. 그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첫 주간의 활동으로부터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쉬어야 한다.
3. 안식일과 언약. 하나님의 율법이 언약의 중심이었던(출 34:27) 것처럼, 그 율법의 중심에 위치한 안식일은 그분의 언약 가운데서 탁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는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이라(겔 20:12, 20:20; 출 31:17 참조)고 선언하셨다. 그런고로 안식일 준수는 영원한 언약이라(출 31:16)고 말씀하셨다. “언약이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된 것과 마찬가지로(신 7:7, 8), 그 언약의 표징인 안식일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징이다”*
4. 연례 안식일들. 매주 안식일(레 23:3)에 추가하여, 이스라엘의 종교력에는 일곱 개의 연례 절기 안식일들이 있었다. 이 연례 안식일들은 제칠일 안식일 또는 주일의 주기와는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레 23:38), 이 연례 안식일들은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이었다(레 23:7, 8, 21, 24, 25, 27, 28, 35, 36 참조).
이 연례 안식일들의 계산은 태음력(太陰曆)에 기초한 성력(聖曆)의 일자에 달렸기 때문에, 그것들은 주일 중 어느 날에나 해당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매주 안식일과 겹칠 때에는 “큰 날”(요 19:31)로 불리워졌다. “매주 안식일(weekly Sabbath)이 온 인류를 위한 창조주일의 마지막에 제정된 반면에, 연례 안식일들(the annual sabbaths)은 시내 산에서 제정된 유대인의 의식(儀式) 제도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예시하는 것이었으므로, 그것들을 준수하는 일은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더불어 종결되었다”*
안식일과 그리스도.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창조주였음을 밝혀준다(고전 8:6; 히 1:1, 2; 요 1:3 참조). 그러므로 그분이야말로 제칠일을 인간을 위하여 쉬는 날로 따로 구별하신 분이시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을 당신의 창조 사업뿐만 아니라 구속 사업과도 관련시키셨다. “스스로 있는”(요 8:58; 출 3:14) 위대하신 분으로서, 그분께서는 안식일을 창조주와 약정한이 매주일의 예배를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는 요소로서 십계명 가운데 포함시키셨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의 구속이라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첨가시키셨다(신 5:14, 15).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님을 창조주와 구주로 받아들인 자들을 구별되게 한다.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이중 역할은 어떻게 그분께서 인자로서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고 주장하실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밝혀준다. 그 같은 권위로 그분께서는 원하셨더라면 안식일을 폐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와는 반대로, 그분께서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것을 온 인류에게 적용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 봉사 생애를 통하여 충성된 안식일 준수의 모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안식일에 예배하는 것이 “자기(예수님의) 규례”(눅 4:16)였다. 그분께서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신 사실은 당신께서 그 날을 예배일로 인정하신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신성성에 대하여 매우 큰 관심을 가지셨으므로, 당신의 승천 후에 일어날 박해 때를 대비하여 당신의 제자들에게 충고하셨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기록한 대로, “그 때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준수할 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창조 사업-세계 역사에 있어서 그분의 최초의 위대한 행위-을 마치셨을 때, 그분께서는 일곱째 날에 쉬셨다. 이 쉼은 완전과 완성을 의미하였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세상 사업을 마치실 때에도, 곧 역사상 두 번째의 위대한 일을 완수하셨을 때에도 거의 동일한 일을 행하셨다. 여섯째 날인 금요일 오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의 당신의 구속사업을 마치셨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 19:30)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 23:54)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당신께서 인간의 구속을 완성하셨다는 상징으로 그분께서는 운명하신 후에 무덤에서 쉬셨다.*
그와 같이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사업을 증거한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 날을 지킴으로 인간을 위해 고분께서 성취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과 함께 즐거워한다.*
안식일과 사도들. 사도들은 안식일을 크게 존중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분명하였다. 안식일이 당도하였을 때, 그들은 장례 행사를 중지하고 “첫날”, 곧 일요일에 그 일을 계속할 계획을 세우고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눅 23:56, 24:1).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대로, 사도들도 제칠일 안식일에 예배하였다. 그의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 출석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행 13:14, 17:1, 2, 18:4), 이방인들까지도 그를 초청하여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였다(행 13:42, 44). 회당이 없는 지역에서는, 안식일 예배를 위해 기도처를 찾았다(행 16:13).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예배에 참여하신 사실이 그분께서 제칠일을 예배를 위한 특별한 날로 받아들이신 것을 나타내듯이, 바울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사도 바울의 충성스러운 매주 안식일 준수는 연례 의식(儀式) 안식일에 대한 그의 태도와는 현저하게 대조적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의문의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본서 18장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연례 안식일들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 17)고 말했다. 이 성경 절의 “문맥이 의식(儀式)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에 언급된 안식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의 ‘그림자’나 모형이 되는 유대인의 연례 절기들에 해당되는 의식(儀式) 안식일들이다.”*
마찬가지로,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의문의 율법의 요구를 준수하는 일에 대하여 충고한다. 그는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 11)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계 1:10)였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일요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주님의 특별한 소유로 언급된 유일한 날은 안식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출 20:10)이라고 말씀하셨다. 후에는 그 날을 “내 성일(聖日)”(사 58:13)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막 2:28)이라고 부르셨다. 성경에서, 주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부르신 유일한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요한이 언급한 주일이 안식일이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확실히 요한이 주일을 주일 중 첫날, 또는 일요일에 적용시켰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상 선례는 없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안식일이 아닌 다른 어떤 날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다른 날도 복되거나 거룩하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신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다른 어떤 날로 변경시켰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그와는 반대로, 성경은 당신의 백성들이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음을 보여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2, 23).
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은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깊고도 풍부한 영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1. 영원한 창조의 기념일. 우리가 이미 연구한대로, 십계명이 안식일에 부여하는 근본적인 의미는 안식일이 세상의 창조를 기념하는(출 20:11, 12) 날이라는 사실이다. 제칠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라는 명령은 “창조의 행위와 안식일 제도와 그 날을 창조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지키도록 한 명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더욱이 전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 때문에 존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대한 기념일로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전 인류에게 지워져 있다.”* 스트롱(Strong)은 안식일을, “당신의 창조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기념일로서 영원히 지켜야 할 의무”라고 말한다.* 안식일을 창조의 기념일로서 준수한 자들은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주요 정당한 주권자이며,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지은 창조물이요 그분의 지배 하에 있는 신민(臣民)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그 제도는 전적으로 기념적인 것이며, 온 인류에게 주어졌다. 그것에는 모호한 점이 전혀 없으며 어떤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되지도 않았다.”* 그분께서 우리의 창조주가 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한, 안식일은 창조의 표징과 기념일로서의 구실을 다할 것이다.
2. 구속의 상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셨을 때, 이미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구속의 기념일도 되었다(신 5:15). “주께서는 만일 정당하게 준수될 것 같으면, 매주 안식일의 쉼이 어떤 나라나 세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세대를 포함하는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항상 자유케 해주도록 계획하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탐욕으로부터, 이득과 권력으로부터,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그리고 죄와 이기심으로부터 오는 예속에서 도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안식일의 쉼은 구속의 특별한 상징으로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지도 하에 죄의 속박으로부터 출애굽한 기념일이다. 우리가 져야 할 가장 큰 짐은 불순종의 죄책이다. 안식일의 쉼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쉬신 사실을 지적해 줌으로써, 곧 죄에 대한 승리의 쉼을 말해 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용서와 평화와 쉼을 받아들이고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3. 성화의 표징. 안식일은 하나님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표이며 거룩함 또는 성화의 표징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겔 20:20 참조)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또한 거룩케 하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표징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케 될 때(히 13:12), 안식일은 또한 믿는 자들이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하여 그분의 보혈을 받아들인다는 표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안식일을 따로 구별하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즉 당신의 특별한 증인들이 되도록 구별하셨다. 그들은 그 날에 그분과 교통함으로 거룩함에 이른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만물을 창조한 능력은 영혼을 당신 자신의 형상대로 재창조하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그것은 성화의 표징이다. 참된 성화는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 곧 품성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 되는 그러한 원칙들에 순종함으로 얻어진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순종의 표이다. 진정으로, 성실하게 넷째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순종할 것이다. 그는 순종을 통하여 성화된다”*
4. 충성의 표. 아담과 하와의 충성심이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던 선악과에 의하여 시험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인간의 충성심은 십계명의 한 가운데 놓인 넷째 계명에 의하여 시험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재림 전에 온 세상이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것임을 밝혀준다. 충성되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는(계 14:12, 9) 자들로 나누어진다. 그 때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 앞에 크게 드러날 것이며 성경의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 창조주께 대한 충성의 증거임이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될 것이다.
5. 교제의 시간.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창 1:24, 25).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교제를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서로에게 주셨다(창 2:18-2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에게 제공되는 최상의 교제의 선물, 곧 당신과의 교제를 주셨다. 인간은 단순히 동물들과 교제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다른 인간들과만 교제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징.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게 진리를 찾는 비그리스도인들이 계몽된 양심의 지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일반적인 원칙들을 이해하도록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롬 2:14-16). 이것은 넷째 계명 외에 다른 아홉 계명들이 어느 정도까지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시행되어 온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매주일의 휴일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왜 주일 중 다른 날에는 해도 괜찮고 또 권장할 만한 일이 제칠일에 하게 되면 죄가 되는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천연계는 제칠일을 지키는데 대한 어떤 근거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마치 모든 날이 동일한 것처럼 혹성들은 제 궤도를 돌며, 식물들은 자라고, 비와 햇빛은 번갈아 내리고 비치며 짐승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분주하게 활동한다. 그러면 왜 인간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는데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기초할 때에만 제칠일 준수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칠일을 지키는 자들은 믿음과 제칠일의 준수를 명령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우러나 그렇게 한다.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는 대신에 그들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임을 나타낸다.
제칠일을 지킴에 있어서, 신자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의 결과로서 안식일을 준수한다.*
안식일 준수는 그들이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으며 그분의 완전한 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나타나는 그분의 의의 산물이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힘으로 사과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먼저 사과나무이어야 한다. 그러면 사과는 자연적인 결과로서 열리게된다. 그와 같이 참된 그리스도인도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거나 다른 아홉 가지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눠주시는 의의 자연적인 결실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율법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제칠일의 외적인 준수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신자의 내적 경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참된 안식일 준수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그분과의) 보다 밀접한 교제를 위하여 안식일을 가장 중요시하길 원하기 때문에 안식일에 금지된 행동들을 자제한다.”*
안식일 준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기를 그쳤으며,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있음을 나타낸다. 진정으로 “참된 안식일 준수의 정신은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조성하고 계시는, 창조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나타낸다. 그것은 올바른 날을 올바른 방법으로 준수하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징으로 삼는다.”*
7. 그리스도 안에서 쉼에 대한 상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지상 가나안의 안식으로 인도하신 일에 대한 기념일인 안식일은 그 당시의 구속받은 자들을 주변 나라의 백성들과 구별시켰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
하나님께서 초청하시는 안식에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자기)일을 쉬”(히 4:10)었다. “이 안식은 우리 ‘자신의 일’에서 놓여나는, 죄를 그만두는 영적 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이 안식에 들어오도록 초청하신다. 안식일과 가나안은 둘 다 이 안식에 대한 상징들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을 때,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아담과 하와에게 당신 안에서 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다. 비록 그들이 실패하였을지라도, 인간에게 그 같은 안식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타락한 후에도, 안식일은 그 같은 안식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서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는 만물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만 아니라, 생애를 변화시키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거민들을 위하여 본래 의도하셨던 저 영원한 ‘안식’에 남녀들로 하여금 들어갈 자격을 얻게 하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적 안식을 실제적인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그들이 그것에 들어가는 일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초청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은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적 ‘안식’, 곧 죄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일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
신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믿음의 이 안식을 경험하기 위하여 기다리지 말라고 호소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그것에 들어갈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히 4:7, 3:13). 이 안식-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이는 구원의 은혜-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려는 모든 노력을 그쳤다. 이와 같이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신자가 복음의 안식에 들어감을 상징한다.
예배일을 변경코자 하는 시도들
안식일이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단이 이 신성한 제도를 뒤엎고자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한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만드셨고 시내 산에서 재차 말씀하신 예배일의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그리스도인들, 즉 일요일 준수자들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카톨릭 추기경인 제임스 기본스(James Gibbons)는 한 때 “그대가 성경을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볼지라도 일요일의 신성성을 인정하는 단 한 줄의 글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토요일을 신성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고 기록하였다.
신교도인 링컨(A. T. Lincoln)은 인정하기를, “부활 이후에 하나님께서 첫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지정하셨다고 하는 신념을 신약 자체가 보증해 준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온 십계명이 도덕적인 율법으로서 구속력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유일한 언행 일치는 제칠일 안식일 준수자가 되는 것”*임을 인정하였다.
만일 그리스도나 그분의 제자들이 예배일을 제칠일로부터 변경시켰다고 하는 아무런 성경상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그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칠일 대신에 일요일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일요일 준수의 기원. 안식일에서 일요일 예배에로의 변경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2세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이 매주 일요일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2세기 중엽쯤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임의로 일요일을 쉬는 날이 아니라 예배일로 준수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주로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된 로마 교회(롬 11:13)는 일요일 예배로 기울어졌다.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는 반 유대인 감정이 일어났으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감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도시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과 구별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유대인과 공통되는 어떤 습관들을 버렸으며 안식일 예배로부터 떠나 일요일만을 준수하는 쪽으로 옮아가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2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일요일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던 동안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계속해서 준수하였다. 5세기의 역사가 소크라테스(Socrate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매주 안식일에 거룩한 성찬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고대의 전통 때문에 그 일을 중단하였다.”*
4세기와 5세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과 일요일 양일에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의 또 다른 역사가인 소조멘(Sozomen)은 “콘스탄티노플과 거의 모든 지역의 사람들은 주일 중 첫 날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도 함께 모였는데, 그 같은 관습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결코 준수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록들은 안식일 준수를 경시하는 일에 로마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제칠일 예배로부터 돌아서고 있던 자들은 왜 주일 중 다른 날이 아닌 일요일을 택하였던가? 주요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분께서 그 날에 드리는 예배에 정당성을 부여하셨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처럼 보일런지 몰라도, 2세기와 3세기의 저자는 한 사람도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서 단 한 줄의 성경절도 인용한 일이 없다. 바르나바스도, 이그나티우스도, 유스티노스도, 이레나이우스도, 테르툴리아누스도, 로타의 클레멘트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오리게네스도, 키프리아누스도, 빅토리누스도, 그리고 예수께서 사셨던 시대에 가깝게 살았던 어떤 다른 저자도 예수님이나 성경의 어떤 부분으로부터도 그와 같은 지시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교 로마의 태양 숭배가 일요일에 더해 준 인기와 영향력이 의심할 바 없이 일요일을 예배일로 점차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다. 태양 숭배는 고대 세계의 도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로마 종교의 가장 오래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기원 후 2세기 초엽부터 있어 온” 동방교회의 태양 숭배 때문에” 로마와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태양신 인빅투스(Sol Invictus)에 대한 숭배가 지배적이었다”*
이 인기 있는 종교는 새로운 개종자들을 통하여 초기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태양 숭배에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사실은 그런 행위가 교부들에 의해 자주 비난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예배 의식에 태양 숭배의 내용이 깊이 반영되어 있는 사실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일요일 법령(Sunday laws)은 4세기에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민사적 성격의 일요일 법령이 발해지고, 다음에는 종교적 성격의 일요일 법령이 생겼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원 후 321년 3월 7일에 민사적인 일요일 휴업을 포고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이 이교의 태양 숭배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고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을 존중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요일을 공휴일로 만듦으로써 그의 정부를 위해 이들 두 부류의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법령은 태양 숭배자로서의 그의 배경을 나타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venerabili die Solis)에 도시에 거주하는 행정관들과 백성들은 쉬도록 하면 모든 작업장은 문을 닫도록 하라.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그들의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교회는 그의 모본을 따랐다. 전 세계적인 회의가 아니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회의였던 라오디게아 종교회의(c. A.D. 364)는 최초의 교회적인 일요일 법령을 발포하였다. 교회 법규 29조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존중하여 “가능한 한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도록” 규정하였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헬라어로 사바톤(sabbaton), ‘the Sabbath’]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 날에 일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안식일에 쉬는 관습을 탄핵하였다.
1260년 간의 예언(본서 12장 참조)이 시작되는 해인, 기원 후 538년에 오를레앙(Orleans)에서 개최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3차 종교회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법령보다 훨씬 더 가혹한 한 법을 발포하였다. 그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교회 법규 28조는, 일요일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농사일까지도 제쳐놓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언된 변경 기도(企圖). 성경은 그리스도 교회의 한 제도로서 일요일 준수는 그 기원이 “불법의 비밀”(살후 2:7)에 근거하였음을 밝혀주는데, 그것은 이미 바울 당시에 활동하고 있었다(본서 12장 참조). 다니엘 7장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예지로 예배일을 변경하려는 기도가 있을 것을 보여주셨다.
다니엘의 이상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공격을 묘사한다. 작은 뿔(계 13:1-10에서는 짐승)로 표상되는 공격 세력은 그리스도 교회 내에 큰 배교를 가져온다(본서 12장 참조). 넷째 짐승으로부터 일어나서 로마의 몰락(본서 18장 참조) 후에 주요한 박해 세력으로 등장하는 작은 뿔은 “때와 법을 변개코자”(단 7:25) 기도한다. 이 배교의 세력은 세상의 대부분을 미혹하는 데 매우 성공하나 최후의 심판은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다(단 7:11, 22, 26). 최후의 환란 동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개입하실 것이며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단 12:1-3).
이 예언은 그리스도교 내에서 오직 한 세력에 딱 들어맞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는 대권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종교조직이 하나 있다. 역사를 통하여 로마 카톨릭 당국이 주장해 온 바를 주목하라:
기원 후 1400년경에 앙카라노의 페트루스(Petrus de Ancharano)는 “교황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권세는 인간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그는 그의 양들을 매기도하고 풀기도 하는 가장 충만한 권세를 가지고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놀라운 주장의 영향은 종교개혁 시대동안에 나타났다. 루터는 교회의 유전이 아닌 거룩한 성경이 인생에 있어서 그의 안내자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슬로우건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성경, 오직 성경만이”었다. 로마 카톨릭 신앙의 가장 뛰어난 수호자 가운데 하나인 존 에크(John Eck)는 교회의 권위는 성경 위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점에 대하여 루터를 공격하였다. 그는 성경상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는 일에 대하여 루터에게 도전하였다. 에크는 말하기를,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교회는 그 자신의 권위에 따라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 그것에 대해서 그대[루터]는 아무런 성경상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였다. 신교에 대항하기 위하여 교황이 소집한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에서 레기오(Reggio)의 대주교인 포쏘의 가스파레(Gaspare de Fosso)는 그 문제를 다시 제기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교회의 권위는 성경에 의하여 가장 분명하게 예증된다. 왜냐하면 그(교회)가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추천하고 거룩하다고 선언하며, 그것들을 읽도록 우리에게 제공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께서 가르치신 성경의 합법적인 교훈들을 동일한 권위(교회)로 중지하였기 때문이다. 율법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날인 안식일은 주의 날로 변경되었다… 이것들과 다른 유사한 문제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여 중지된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율법을 온전케 하러 오셨지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변경되었다”* 천주교회는 아직도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 개종자를 위한 카톨릭 교리문답집(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1977년도 판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문답을 싣고 있다:
“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우리는 카톨릭 교회가 토요일로부터 그 신성성을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학자인 존 A. 오브리엔(John A. O’Brien)은 그의 베스트 셀러인 백만인의 신앙(The Faith of Millions: 1974)에서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성경에는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저들의 신앙을 교회로부터가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는 비 카톨릭 교도들이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까? 물론이다. 그것은 한결같지 못한 행동이다. 그는 말하기를, 일요일 준수의 관습은 “성경의 명백한 말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따르는 것이다. 그 같은 일요일 준수는 비 카톨릭 종파들에게, 마치 집을 뛰쳐나가는 소년이 여전히 그의 호주머니에는 어머니의 사진이나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도망쳐 나온 모 교회(Mother Church)를 상기시켜주는 요소로서 남아 있다.”*
이같은 대권을 가졌노라고 하는 주장은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며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안식일의 회복. 이사야 56장과 5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회복하라고 이스라엘에게 호소하신다. 이방인들을 당신의 우리로 모아들이는 미래의 영광(사 56:8)을 계시하면서, 그분께서는 이 구원 사업의 성공을 안식일을 거룩하게 준수하는 일(사 56:1, 2, 6, 7)과 연결시키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해야 할 특별한 사업을 주의 깊게 개괄하신다. 비록 그들의 사명이 세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특별히 믿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분의 교훈에서 떠난(사 58:1, 2) 한 부류의 백성들에게 집중된다. 그분께서는 믿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해야 할 그들의 사명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신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2-14).
영적 이스라엘의 사명은 고대 이스라엘의 사명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율법은 작은 뿔의 세력이 안식일을 변경시켰을 때, 무너졌다(파괴되었다). 유린된 안식일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회복되어야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현대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안식일 제도는 회복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율법의 성벽에 생긴 균열은 보수되어야 한다.*
율법을 회복시키고 창대케 하는 이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영원한 복음과 관련된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의 기별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이 기별을 선포하는 것이 재림 전에 있을 하나님의 교회의 사명이다(본서 12장 참조). 이 기별은 세상을 일깨워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심판을 준비하도록 할 것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계 14:7)인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권고의 말은 하나님의 영원한 율법의 넷째 계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이 마지막 경고에 포함된 의미는 널리 잊혀진 당신의 안식일을 재림 전에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확증해 준다.
이 기별의 전파는 전 세계적인 충돌을 촉발시킬 것이다. 중심적인 논쟁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안식일의 준수일 것이다. 이 충돌에 직면하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생겨나게 할 것이다.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은 마침내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이다(계 14:9, 12; 본서 12장 참조).
하나님의 율법을 창대케 하고 무시된 하나님의 안식일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일관되고 충성스러운 모본을 제시해야 한다.
안식일의 준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출 20:8)기 위해서, 우리는 일주일 내내 안식일을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방법으로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주일 동안 활력을 너무 소모해서 안식일에 그분을 예배하는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창조와 구속에서 나타난 그분의 은혜로운 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하도록 초청을 받는 안식일은 하나님과 특별히 교통하는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거룩한 분위기를 훼손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일을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출 20:10).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과 모든 사업상 거래를 피해야 한다(느 13:15-22).
우리는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사 58:13)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세속적인 관심사와 대화와 사상에 몰두하거나 스포츠에 참여함으로 이 날을 우리 자신의 쾌락에 바치는 일은 창조주와의 교제를 손상시키며 안식일의 신성성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들도 안식일의 축복을 즐길 수 있도록 우리의 권한 하에 놓여 있는 모든 사람들-우리의 자녀들과 우리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방문객들과 짐승들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출 20:10).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에 시작하여 토요일 저녁 해질 때에 마쳐진다(창 1:5; 막 1:32 참조).* 성경은 안식일 전 날(금요일)을 아무것도 안식일의 신성성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위해 준비하는 날-예비일(막 15:42)-이라고 부른다.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의 거룩한 시간동안 저들도 수고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출 16:23; 민 11:8참조) 이 날에 안식일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안식일의 거룩한 시간이 다가올 때, 가족이나 신자의 무리들이 금요일 저녁 해지기 직전에 함께 모여 찬미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므로 그리스도의 성령을 환영받는 손님으로 초청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토요일 저녁 안식일이 끝나갈 무렵에는 계속되는 주일 동안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예배에 참석함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안식일을 마감해야 한다.
주께서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삼도록(사 58:13) 당신의 백성들을 초청하신다.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 있을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를 때에만 그들은 참된 기쁨과 하나님께서 이 날에 저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규적으로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셨으며 예배에 참석하고 종교적인 교훈들을 말씀해 주셨다(막 1:21, 3:1-4; 눅 4:16-27, 13:10). 그러나 그분께서는 예배만 드리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셨으며(막 1:29-31; 눅 14:1), 옥외에서 시간을 보내시고(막 2:23), 거룩한 자비로운 일을 행하며 다니셨다. 그분께서는 하실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병자와 고통 당하는 자들을 고치셨다(막 1:21-31, 3:1-5; 눅 13:10-17, 14:2-4; 요 5:1-15, 9:1-14).
고통을 덜어주는 일로 비난을 받았을 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2)고 대답하셨다. 그분의 치료 행위는 안식일을 범하거나 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행위는 영적 활력과 기쁨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시킨 번거로운 규제들을 제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 부요를 위하여 안식일을 고안하셨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진작시키는 활동들은 정당하나 그 같은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며 안식일을 공휴일화 시키는 활동들은 온당치 못하다.
안식일의 주께서는 당신의 모본을 따르도록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그분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기쁨과 영적 축제-하늘을 미리 맛보는-로써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안식일이 영적인 낙담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매주마다 안식일은 우리의 양심에 위안을 주며 우리의 미진한 품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준다. 그분께서 갈바리에서 성취하신 일은 우리의 속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다.”